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표도르 예멜리야넨코 (문단 편집) === [[Pride]] === 2002년 6월 PRIDE 21에서 그가 만난 상대는 Pancrase의 강자 네덜란드 출신의 [[세미 슐트]]였다. 당시 탄탄하지 못한 프라이드 헤비급에서 챔피언 후보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의 기량을 갖추고 월등한 하드웨어를 가진 그를 상대하는 표도르를 보며, 사람들은 과연 이길 수 있을까 하며 흥미롭게 지켜봤다. 212cm, 130kg의 거구를 상대로 183cm, 109kg의 표도르는 신체적으로 매우 불리한 상태였다. 표도르도 스탠딩은 자신이 없었던 것일까? 3라운드 내내 슐트를 그라운드로 압도하며 만장일치 판정승으로 프라이드에서의 첫 승리를 장식하게 된다. 2002년 12월에는 당시 PRIDE 2인자인 [[히스 헤링]]과 맞붙었다. 표도르는 다크호스 정도의 입지였고 많은 사람이 헤링의 승리를 예상했지만 경기가 시작되자 라운드 내내 일방적으로 헤링을 강타했다. 경기 후반부에는 포지션이 반대로 뒤집혀 히스헤링도 파운딩을 쳤지만, 결국 1라운드가 끝난 뒤 닥터 스톱으로 경기가 끝난다. 당시 그라운드에서 강렬하게 펀치를 날리는 경우가 드물어, 당시에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파일:attachment/표도르 예멜리아넨코/94.gif]] 이 경기로 타이틀 도전권을 얻게된 표도르는 2003년 3월 16일,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와 헤비급 타이틀 매치를 갖게 된다. 당시 노게이라는 콜먼, 헤링, 심지어는 떠오르던 야수 [[밥 샙]]까지 무너뜨리며 당대 최고라고 평가받고 있었다. 허나 표도르는 선제 타격과 테이크다운으로 우위를 점한 뒤 노게이라를 수세로 몰고갔고, 서브미션 시도를 무력화시키고 난 후 특유의 얼음 파운딩으로 우세를 점하였다. 이때 무려 20여 분 동안 노게이라를 그라운드와 파운드에서 두들겼다. 경기 후 세명의 심판들이 모두 3:0의 만장일치로 표도르의 판정승을 선언하였으며 표도르는 프라이드 헤비급 챔피언 자리에 오른다. 그는 이 타이틀을 프라이드가 없어질 때까지 지킨다. [[파일:attachment/표도르 예멜리아넨코/fb.gif]] 석달 뒤 2003년 6월에는 IWGP 헤비급 챔피언 출신 [[후지타 카즈유키]]와 맞붙는다. 이때 표도르는 경기를 일찌감치 끝내려는 의도로 선제 공격을 하였으나 후지타의 lucky훅이 표도르의 오른쪽 얼굴에 강타하여 표도르는 휘청거리기 시작한다. 이후 테이크다운을 당해 가드에 몰리지만 후지타의 공세를 원천봉쇄하며 체력을 회복했고, 이스케이프 후 스탠딩에서 바디킥+원투 콤비테이션으로 다운을 빼앗은 후 리어네이키드 초크로 마무리지었다. 표도르는 경기 후 가진 인터뷰에서 '후지타는 단 한방만 적중시켰을 뿐이나 이것이 꽤나 셌다.'라고 소감을 밝힌다.[* 여기서 후지타가 천금같은 기회를 잡고도 그걸 못살렸다는 평이 많았지만 이건 라이트팬들의 평가고 실제로 자세히 보면 표도르가 후지타의 카운터에 맞을때 후지타도 표도르의 훅을 맞는 바람에 후지타 역시 약간이나마 다리가 풀려서 이후 대응을 잘하지 못하는걸 볼수 있다. 표도르의 필사적인 클린치와 방어도 빛났지만.] [[파일:external/cdn1.sbnation.com/282jlz6_jpg.gif]] 그 뒤 2003년 8월에는 [[개리 굿리지]]와 경기를 갖는다. 굿리지와의 경기에서 그는 타격에서 강타하여 다운 시킨 뒤 그라운드에서 연타를 퍼부어 TKO승을 하게 된다. 이때 표도르는 손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고 뒤이어 수술을 하게 된다. 이 때문에 그는 한동안 링을 떠나야 했다. [[파일:attachment/표도르 예멜리아넨코/df.gif]] 이 당시 표도르는 당시 떠오르던 강자, [[미르코 크로캅]]과 경기를 가질것이 거의 확실시 되었으나, 이 부상 때문에[* 이후에도 주먹 부상을 언급하면서 중요한 경기를 질질 끄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을 정도다.] 프라이드 측에서는 잠정 타이틀을 걸고 크로캅과 노게이라의 대진을 성사시키고 이 대진에서는 노게이라가 승리한다. 손이 나은 뒤 2003년 12월, '이노키 봄바예'에서 [[나가타 유지]]를 1라운드에 KO시키며 승리한다. 한데 복귀전을 PRIDE가 아닌 봄바예에서 가졌기 때문인지 봄바예의 프로모터들이 [[야쿠자]]의 협박을 받는 사태가 벌어졌다. 2004년에는 다시 PRIDE로 돌아와 헤비급 GP 개막전에 출전하여 PRIDE 2000 무차별급 그랑프리 우승자이자 [[UFC]] 전 헤비급 챔피언 출신인 [[마크 콜먼]]과 맞붙는다. 콜먼의 묻지마 태클에 밀려 TD를 허용했으나 가드에서 암바를 성공시키며 2분 11초만에 승리를 거뒀고, 이로써 그가 타격전뿐 아니라 하위 포지션에서도 꽤 잘 싸울 수 있는걸 보여주는 경기이기도 하다. [[파일:attachment/표도르 예멜리아넨코/2f.gif]] 뒤이어 2004년 6월에는 GP 2라운드에서는 역시 전 UFC 헤비급 챔피언인 [[케빈 랜들맨]]과 경기를 가졌다. 랜들맨은 표도르를 상대로 환상적인 [[수플렉스]]를 성공시켰으나 표도르는 거의 대미지를 입지 않은 듯 곧바로 스윕에 성공했고, 파운딩에 이은 암락으로 승리를 거둔다. 이로써 해머하우스는 표도르에게 1, 2인자가 모두 패한다. 2004년 8월에는 GP 결승전에서 [[오가와 나오야]]를 가볍게 암바로 제압, 결승에서 다시 한 번 노게이라와 격돌했다. 장기인 얼음파운딩을 살리려 적극적으로 그라운드 게임에 임했지만 노게이라는 1차전때의 그 노게이라가 아니었다. 서브미션보다 파운딩 위주인 표도르의 그라운드 스타일을 파악한 노게이라는 표도르를 완벽히 가드에 가둬놓으며 게임 분위기를 좋게 이끈다.[* 농담이 아니라 표도르는 경기내내 아무것도 못했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닐정도 노게이라의 가드에 농락당했다. 장기인 얼음파운딩은 노게이라의 가드에 막혀 죄다 단발로 끝났고 피해도 못줬다. 화면에서도 표도르가 당황한 기색이 눈에 보일 정도였는데, 간신히 가드에서 빠져나와놓고는 잠시 고민하다 다시 노게이라의 품에 무력하게 안기는 장면이 나올 정도. 분위기를 바꾸려 스탠딩 선언이나 스톰핑을 날릴법도 한데.] 그라운드 상황에서 펀치를 날리는 순간 노게이라가 몸을 일으키면서 둘의 머리가 충돌했고, 이로 인해 표도르의 눈가에 굉장히 심한 컷팅이 생기며 경기 속행이 불가능해진다. 결국 경기는 무효처리되고 약 네 달 후인 12월 31일의 남제에서 3차전을 기약하게 되었다. 1차전과 달리 표도르는 NC가 선언되기 전까지 경기 5분 내내 노게이라의 가드에 갇혀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흐름이 안 좋았기 때문에 효로드 입장에서는 오히려 다행스러운, 노게이라 입장에서는 무척 아쉬운 결과였다.[* 이 때 마이크를 잡은 표도르에게 어떤 관중이 '''"Go your home!"'''이라고 외치는 해프닝이 있었다. 표도르가 관중석을 바라보자 조용해진건 덤.] 그리고 펼쳐진 3차전에서 2차전의 경험을 살려 완전히 다른 게임플랜을 짜왔는데, 아예 그라운드로 돌입하지 않는 전략을 선보인다. 주짓수 매지션이라 불리는 노게이라를 상대로 그라운드는 본인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인지하였던 것이다. 이때 경기 1라운드에서 표도르는 노게이라를 경기 시작후 9분에 걸쳐 타격을 가했으며 유도식 메치기로 노게이라를 그라운드에 몇차례나 매다 꽂았다. 2라운드와 3라운드에서는 표도르는 테이크 다운식 방어와 카운터 펀치로 경기를 이끌었으며 그 결과 다시금 3:0 판정승을 거둔다. 이로서 표도르는 60억 분의 1의 사나이의 명칭-당시 그랑프리의 부제-와 잠정+정식 헤비급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 [[파일:attachment/표도르 예멜리아넨코/d2.gif]] 표도르의 주 무기인 펀치-TD 연계. 2005년, 표도르는 크로캅과 헤비급 타이틀 방어전을 치르기로 한다. 크로캅과의 대전의 2003년부터 거론된 꽤나 유명한 떡밥이었는데 당시 크로캅은 K-1에서 프라이드로의 전향을 성공적으로 하였으며 강자들을 연이어 꺾으면서 자신의 랭킹을 높이 끌어올였다. 그 뒤 크로캅은 표도르에게 공개적으로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는데 따라서 프라이드 측에선 두 선수간의 대결을 2003년 말 쯤에 개최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표도르는 프라이드와의 계약상의 문제로 잠시 프라이드를 떠나 이노키의 붐 바예 프로모션과 계약을 하였기 때문에 두 선수간의 매치를 성사 시킬 수 없었고 이에따라 프라이드 측에선 잠정 챔피언 타이틀 매치를 벌여 노게이라와 크로캅과 맞붙게 하였다. 이때 노게이라가 승리하였고 때문에 통합 타이틀 전에선 크로캅이 아닌 노게이라가 표도르와 대결한 것이었다. 그 뒤 노게이라의 패배 이후 크로캅은 표도르에게 도전하고자 하였으나 랜들맨에게 패배하여 이것을 실현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워터맨을 꺾고 부활한 뒤 랜들맨과의 재경기에서 그를 이겼으며 뒤이어 마크 콜먼을 꺾음으로써 랭킹 1위에 오르게 된다. 이로써 2005년 8월 28일에 마침내 크로캅과 표도르는 맞붙게 된다. 이는 종합격투기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잘 알고 있는 유명한 매치였다.[* 이는 국내 기준으로 당시 방송사였던 XTM에서 '''세기의 대결'''이라면서 광고를 많이 해줬던 덕분이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시내버스 측면 광고판에도 광고를 붙였고, 해당 경기를 표도르 팬과 크로캅 팬을 초청해서 '''극장에서''' 생중계 해주기도 했다. 크로캅 자체도 K-1 경력 등의 이유로 많이 알려져 있기도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약 10%라는 당시 마이너 매체였던 MMA 중계로(그것도 외국 선수간의 대결로) 케이블 기준 대박 시청률이 나오게 되었다. 이 경기 이후 최홍만의 분전과 겹치면서 국내 격투기 붐이 일게 되는 계기가 된다.] [[K-1]] 출신인 만큼 타격에 능한 크로캅을 상대로 표도르가 그라운드 위주의 플레이를 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표도르는 타격 위주로 경기를 운영한다. 크로캅은 1라운드에서 잽을 적중시켜 표도르의 코뼈를 골절시킨다. 표도르는 이러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크로캅의 타격을 잘 피하면서 적절하게 그라운드로 유도하였고 체력이 약한 크로캅을 체력을 천천히 소모시킨다. 이로써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표도르가 유리해 졌고 그렇게 크로캅을 농락한 표도르는 3:0 판정승을 거두면서 명실공히 PRIDE 헤비급 최강의 남자임을 보여줬다. [[파일:attachment/표도르 예멜리아넨코/d9.jpg]] 이후 2005년 남제에서 [[줄루징요]]를 26초만에 정리해버린다. 표도르의 매치업중에 가장 논란이 많은 경기로, 마이너 단체에서 활약했고, 메이저에서는 센토류를 이긴 1전밖에 없던 선수를 아버지가 유명하단 이유로 이미지 메이킹해서 표도르와 붙였다. 2006년 10월의 미국 대회에서 다시 만난 마크 콜먼을 관광태운다. 2006년 남제에서는 마크 헌트를 상대로 방어전을 치룬다. 이때 랭킹 1위였던 크로캅이 UFC로 떠났으므로 마크 헌트가 랭킹 1위 자격을 갖고 있었다. 표도르는 발가락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바를 성공시킨다. 그러나 헌트는 이것에서 빠져나왔으며 역으로 키 락을 두 번이나 거는 놀라온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표도르는 이 두 번의 기무라 공격을 모두 버텨내었고, 그 후 그라운드에서 탈출하여 다시 헌트의 탑을 뺏은 뒤 8분 15초 경 역으로 헌트에게 기무라를 걸어 탭아웃을 받아내며 승리를 거둔다. 표도르 논란 매치업 2번째. 전형적인 반쪽 선수인 마크 헌트를 엄청난 강자로 이미지 메이킹해서 표도르와 붙였다. 이런 헌트한테도 그라운드 하위에서 고전하는 모습을 보여서 그라운드가 막장인 아닌가 하는 의심이 퍼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2007년 3월 Bodogfight에서 당시 미들급 5위였던 [[맷 린들랜드]]를 상대로 복귀전을 치렀다. 경기 초반 더블 언더 훅을 파인 채 테이크다운 당할 위기에 처하자 로프를 잡아서 버텨내었고[* 엄연한 반칙이다. 이것때문에 한동안 까였고 '''효도로프'''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게 되었다.] 역으로 테이크다운한 다음에 린들랜드의 하체 관절기를 방어하고 마운트를 장악한 뒤에 리버스 암바로 승리를 거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